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은 한 개인의 파멸을 넘어, 시대의 거대한 힘 앞에 무너지는 순수와 지식에 대한 비극을 다룬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나를 압도한 감정은 슬픔, 무력감, 그리고 공허함이었다. 무엇이 샤오쓰를 그렇게 절망의 끝으로 몰았을까? 이 영화는 단순한 청소년 범죄 스토리가 아니라 1960년대 대만의 정치적, 사회적 변동 속에서 몰락해가는 지식인 가정과 그들의 자녀가 겪는 혼란을 담고 있다.
샤오쓰는 지식인의 아들이자, 시대의 혼란 속에서 고립된 인물이다. 샤오쓰의 아버지는 엘리트 지식인으로, 권력을 믿었으나 결국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며 무너져간다. 1950년대 후반의 대만은 외부 세력의 힘에 의해 변화를 겪는 시기였으며, 샤오쓰의 아버지가 상징하는 ‘지식’은 이 강력한 외부의 ‘힘’에 무력해진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왕선생한테 배신 당하며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샤오쓰의 아버지는 체포되고, 그가 의지하던 안정적인 삶의 기반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샤오쓰는 아버지의 몰락을 마주하며, 자신 역시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깨닫게 된다.
샤오쓰는 순수한 사랑을 믿었지만, 여자친구 밍 역시 세상에 지친 존재였다. 밍은 생존을 위해 자기가 의지할 수 있는 힘과 권력을 가진 남자를 찾아 떠난다. 밍에게 힘이란 곧 생존이고, 이것은 밍이 샤오쓰를 떠나 샤오마를 선택하게 만드는 결정적 이유다. 샤오마는 밍의 뺨을 때릴 수 있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총을 가지고 있는 남자다. 밍의 이런 선택은 샤오쓰에게 큰 배신으로 다가온다. 샤오쓰가 느끼는 절망은 단순히 사랑을 잃은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 역시 권력의 힘 아래 무력해진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 대만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기였다. 그 시대는 힘이 곧 권력이던 시기였고, 지식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퇴색되어 갔다. 샤오쓰의 아버지처럼 지식인들은 변화하는 권력 구조에 적응하지 못했고, 이는 샤오쓰의 가족에게 큰 비극으로 다가온다. 샤오쓰가 결국 칼을 들고 밍에게 향한 것은 단순한 질투가 아닌, 자신이 믿었던 지식과 사랑이 무너져 내린 데 따른 절망의 표현이었다.
영화는 1960년대 대만을 천천히 어루어 만지는 듯이 담고있다. 물론 나는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영화를 보는 시간 만큼은 그 시간과 공간의 공기와 긴장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내가 살고 있고 속해 있는 현 대한민국의 사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에서 그려진 세대 간 갈등과 몰락하는 가치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고있다.
영화에서 샤오쓰는 점점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불신과 무력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한국 사회 청년들이 겪는 좌절과 닮아 있다. 청년층은 불안정한 고용, 주거 문제, 학벌 사회, 경쟁 등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많은 청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불공정한 시스템으로 자리잡은 사회 구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다양한 방법으로 절망감과 분노를 표출한다. 증가하는 청년 우울증, 쉬고 있는 청년의 비율, 하락하는 출생율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영화 후반부의 샤오쓰의 행동을 절대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행동은 심리적 고립에 의한 세상에 대한 무력감과 분노를 극단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의 대상이 밍이였다는 지점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샤오쓰와 밍의 관계는 힘과 생존의 논리로 연결될 수 있다. 밍이 자신을 보호해줄 힘을 찾아 남자를 찾고 샤오쓰를 떠나는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연애와 결혼이 경제적 안정과 깊게 연결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특히 한국에서도 결혼이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사랑과 생존의 문제는 긴밀히 얽혀있다. 사랑과 생존은 흔히 함께 쓰이는 단어는 아니다. 낭만이라고는 없고 교환가치로만 사랑과 관계를 치부하는 느낌이라 누군가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이 가장 유의미한 가치로 자리잡은 우리 사회에서 사랑, 연애, 결혼이 생존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는 집요하다. 실화소재의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픽션, 즉 ‘가짜’지만 동시에 ‘진짜’처럼 느껴지게 한다.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후반부에서 샤오쓰가 촬영장의 감독에게 진짜랑 가짜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무슨 영화를 찍느냐고 일갈하는 부분이다. 순간 제 4의 벽이 깨지는 것처럼 감독(에드워드 양)이 관객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차곡차곡 쌓아온 강한 몰입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객관성을 찾게 하는 장면이었다. 영화가 현실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지점이었다. 영화는 변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무언가를 바꾸려는 대단한 시도를 하기보다는, 이미 흘러간 순간을 재구성하여 우리가 함께 할 수 없었던 시간을 대신 채워준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를 대신해, 영화는 그 자리에 있었고, 그로써 영화는 역사의 일부로서 그 자체가 현실이 되어간다. 이 영화는 진짜를 담아내고자 한 가짜에 불과하지만 결국 나에게, 그리고 다른 수많은 관객들에게 진짜로 다가온다.
영화가 세상에 나온 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변하지 않은, 변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다. “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야?” 바쁘게 살다 보면 거대한 물결 속에서 그냥 흐르는 대로 의지 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만 같다. 노래 가사 말마따나 답을 쫓아 달려가고 있는데 질문을 두고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영화들이 나를 환기시킨다. 사람들이 샤오츠처럼 손전등을 내려놓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감히 내가 조금이라도 어둠을 밝히는 손전등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욕심을 마음 한 켠에 고이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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